나의 조선미술 순례


우연히 화가 이쾌대의 그림을 보고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 농촌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남자는 두루마리를 입었으나 갓이 아닌 중절모를 쓰고 손에 팔레트를 들고 있다.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 표정인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이지만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오묘함이 있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바로 그 작품을 통해 이쾌대라는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월북작가이기 때문에 반세기 동안 묻혀있었지만 이제서야 조명을 받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한 궁금증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구매로 이어졌다. 이 책은 저자 서경식 교수의 깊이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술인들의 대답이 흥미로우면서도 묵직하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이쾌대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지난 10월 30일, 전시회 끝무렵에 부랴부랴 다녀왔다. 근대미술의 한 획을 그었다거나 비운의 천재라는 설명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 눈치보며 일찍 퇴근하면서까지 전시회를 다녀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전시회에서 만난 그의 이미지는 책에서 본 그것과는 달랐다. 책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피지배자 입장에서 고뇌하는 예술인의 모습으로 비춰졌는데 전시회에서는 선후배를 잘 챙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인간적이면서도 성실했던 점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가 왜 북한을 택했는지는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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