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의 공간


20대 중반의 아가씨치고, 좋은 옷과 좋은 가방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 편이다. 내가 개념녀라서가 아니라, 관심사가 나를 치장하는 것이 아닌 온갖 다른 것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한여름의 더위가 절정을 향할 무렵에 아름답고 편안한 내 공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마도 이제 만 3년이 되어가는 직장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온 것인지 고민했던, 바로 그 시점이었던 것 같다. 뭔가 에너지를 쏟고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시집 간 동생의 방이 리모델링 타겟이 되었다. 8월 15일 광복절 정말 갑작스럽게, 땀을 뻘뻘 흘리며 책상2개(+서랍), 침대, 옷장(전부 초등학교 때부터 썼던 것들!)을 갖다 버리며, 엄마와 함께 집안을 완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별 생각없이 무모하게 벌인 일이 밤 11시가 되서야 겨우 끝냈고, 다음 날에는 손이 탱탱 불어서 찌릿찌릿했다. 그 후 일주일 간은 도배를 할지, 페인트 칠을 할지, 색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즐거우면서도 머리가 굉장히 지끈거렸다. 흰색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파랑과 흰색을 메인 컬러로 선택했다. 사실 파랑색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상하게 엄마는 딸인 내게 분홍색 물건보다는 파란색 물건을 더 많이 사주셨었고, 사용 중인 침구류는 죄다 파란색이고(!) 파란색 계열 옷도 많고(!) 이래저래 주변에 파란색이 난무하다.





드디어 8월 24일, 또 한번 생난리를 피웠다. 흰색과 파란색, 그리고 검정색 잉크와 붓 등의 부자재를 구입하여 집에 돌아온 뒤 거의 5시간 가까이 페인트 칠을 했다. 인터넷에서 힘들다는 글을 보고서도 근거없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는데, 겨우 한시간 뒤 1시간 뒤에는 그 자신감은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내가 롤러를 굴리는게 아니라 롤러가 날 굴리는 듯한 느낌, 나는 육체노동 타입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그래도 페인트 칠은 그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니까 힘들다힘들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하게 되는 것 같다. 한 50% 이상 마치게 되면 보람차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파란색 페인트를 칠했을 때는 뿌듯함으로 어쩔 줄 몰랐다. 사실 원하던 색상과는 많이 달라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막상 칠해 놓으니까 아주X100 괜찮았다. 


곧바로  커튼과 이불 커버 구입까지 마쳤다. 역시나 색상과 소재, 모양이 또 한번 고민의 구렁텅이로 날 몰아넣었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천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늘 다른 사람의 조언과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해왔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접근하는 것은 결국 나라서 차라리 내가 고민하고 후회하며 다음 번에 더 좋은 선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낫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모든 책임도 오롯이, 깔끔하게 내가 지는 것으로. 그래서 화이트 침구류와 화이트 톤의 커튼을 선택했다. 무난하고 단정하고 색을 많이 쓰는 것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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