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회사를 때려치고 경제를 배웠다는 코너 우드먼의 전작을 매우 즐겁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별다른 생각없이 골랐다. 그런데 전작의 표지는 여유롭고 장난끼 가득한 대학생 같았는데 두 번째 책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좀 낯설었다. 갑자기 과장님으로 불러야만 할 것 같달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름이 늘어난 것도 있겠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답을 찾고자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얼굴에서 드러났다.


사람들은 모두 최저가를 찾는다. 최저가를 찾으면 쿠폰을 적용하고 포인트를 적용해서 깎고 또 깎아낸다. 유통사는 제조사를 옥죈다.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이윤이 적어지더라도 대량으로 생산해서 대량으로 파는 것으로 이익을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재료비를 죽어라 낮춘다. 이 책은 바로 그 재료비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차 여행 중에 마신 커피 한 잔 때문에, 그 커피를 담고 있던 잔에 쓰여진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줍니다' 라는 문구와 공정무역로고 때문에 저자는 여행을 시작했다. 커피 시장의 공정 무역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목숨을 걸고서 일을 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제 3세계 노동자의 민낯을 드러낸다. 소비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않았던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아니면,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들여다 보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회피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일부 깨어있는 소비자들은 윤리인증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으며 제 3세계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눈에 비친 노동자의 삶은 어떤 변화도 없었다. 공정무역제품의 시장은 매년 커져 가는데 실제 돈을 버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고 한다. 멋지게 그려진 윤리인증 로고는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거나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것 외에 무슨 역할을 하는가. 사실 로고 사용료는 결국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책에서는 커피 외에도 니콰라과, 중국, 라오스, 아프가니스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고무농장, 주석, 바닷가재, 양귀비를 통해 바라본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지적한다.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눈을 감는 기업들, 불법 행위를 눈감아주는 국가, 노골적으로 자본을 휘두르는 중국, 높은 문맹률의 노동자들,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기업가들, 그리고 저임금. 일부는 목숨을 걸어가며 일을 하나 점점 더 가난해진다. 과연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걸까? 경제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반드시 희생해야 하는 걸까? 이토록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답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들은 제대로 값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각 환경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찾아내어 상품의 질을 높이고 이익을 증가시킨다.


소비의 사회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써 마음이 편치 않다. 기업에게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며 이익을 내지 못하면 망한다. 소비자는 브랜드하고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맺은 제 3세계 공장 및 농장과도 결국은 연결되어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타이어, 휴대폰 케이스, 주방용품, 전자기기, 과자 봉지를 만들 때 제 3세계에서 획득된 재료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업이 윤리적, 최소한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 여부는 소비자들에게는 멀고도 막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이것이 윤리인증 로고가 찍힌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보다 더 세상을 구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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