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20대


드디어, 내일이면 서른이다, 서른.

남들은 서른을 앞두고 한 달간 우울해 한다는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나의 29살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꽤 훌륭했지만 그로 인해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제 알러지성 비염은 여름을 제외하고 늘 달고 다니며, 감기인 줄 알았는데 신우신염이라는 것에 걸리질 않나, 인생 처음으로 골절도 겪었다. 병원에 좀 더 자주 들락거리긴 해도 평소 회복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느려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깟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신체가 노화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운동도 좀 하고 잘 관리하라는 몸의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올해 하반기에 블로그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사실 대학원 입학 준비 때문이었다. 가방끈 늘리는 것에 대해 그토록 갈등했었으나 결국 대학원생이 된다! 2주 전에 지도교수님 면담하러 학교에 찾아갔다가 잠깐 캠퍼스를 거닐었다. 생기발랄한 어린 친구들을 보니까 그냥 좋았다. 회사일에 지쳐있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묵직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운 어른들과만 어울렸는데, 비록 취업의 걱정은 있을지 몰라도 농구하면서 뛰노는 모습, 빈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 땐 돈은 없어도 정말 즐거웠던 것 같다. 동아리 활동했을 땐 한 선배가 우리 너무 시트콤 찍는 것 같다고 해서 다들 깔깔깔 웃었었는데.


올해는 드디어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그렇게나 배우고 싶어했으면서도 주변에 클래식 기타를 배울 만한 곳이 없어, 기타를 선물 받고서 3년 만에 시작했다. 코드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동요를 거쳐 카르카시를 본격적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손가락에 금이 갔다. 결혼식에 갔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부케받는다고 한껏 꾸미고 갔는데, 정말 부끄러웠다. 아니, 진짜 쪽팔렸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쪽팔림이 사라지자 아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골절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느낌이 께름칙해 결국 월요일 오후에 사내병원에 갔는데 골절이란다. 퇴근하면서 눈물이 났다. 왜 울었던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는데 그냥 무척 서러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타를 내려놓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굴이 조금 자글자글해지더라도 기대가 된다. 취향이 세밀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좀 더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생기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능수능란하고 멋지게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질 내 모습은 과연 어떻게 변할지! 일단 어릴 때부터 틈틈히 작성해 놓은 '이런 어른, 이런 리더는 되지 말 것'를 종종 되새긴다면, 적어도 나쁜 어른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아이처럼 작은 것에 기뻐하고, 노인처럼 평범한 것에 감사한 날들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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