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물도 여행기2


등대섬을 향해 간다. 

생각보단 길이 험하지만 그렇다고 등산복 풀세트를 갖춰야 할 정도는 아니고 동네 뒷산 갈 때 신는 정도의 신발이면 될 것 같다. 애인과 함께 온 것으로 추측되는 여자분들은 구두나 플랫슈즈를 신고 있었는데, 의외로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망태봉을 넘어서부터는 바닷바람이 거세져서 외투정도는 하나 미리 챙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등대섬으로 향하는 길도 매우 아름다워서 또 꾸물꾸물 대면서 걸어갔다. 





드디어 등대섬 바로 앞까지 도착. 물길이 열릴려면 3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책읽으면서 기다리려다가 정말 너무너무너무 추워서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다음에 날씨 좋을 때 소매물도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등대섬에 가봐야지.





마을에 도착해가면 중턱에 할머니들이 김, 미역 등을 팔고 계신다. 조금 맛을 보니 뻥튀기 같은 중독성이 느껴져서 파래김 3뭉치를 샀다. 집에가니 엄니가 이런 것도 사올 줄 아냐고 예뻐해줬다. 5000원어치 치곤 양이 꽤 많아서 엄니가 좋아하는 눈치다. 집에와서 참기름에 살살 볶아 먹으니 진짜X9999999 맛있어서 간식으로도 잘 먹고있다.





선착장쪽으로 도착해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매점 뒷쪽에 있는 식당에 찾아가 멍게비빔밥(10000원)을 주문했다. 통영에 돌아다닐 때, 멍게비빔밥을 파는 가게들을 종종 봐왔기 때문에 아마도 충무김밥과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이 아닐까 싶었다. 보는 것만큼 먹는 것도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현지 음식은 꼭 먹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여러 반찬들과 함께 굴미역국도 같이 주셨다. 처음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멍게비빔밥은 의외로 비리지 않고 꽤 산뜻한 맛이 났다.





선착장 옆에는 작은 어시장이 있는데, 배를 기다리는 동안 회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주로 굴을 먹었다. 아주머니는 망치질과 칼질을 해서 능숙하게 껍질을 따고 바닷물에 굴을 행궈 3등분을 한 뒤 그릇에 담았다. 저번 탄도항에서 먹었던 굴과는 달리 이 녀석들은 정말 단단해보이고 거대해서 신기했다.





12시 20분 배편인데, 사람들 줄 선것이 장관이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줄이 길었는데, 11시 즈음에도 꽤 길었다. 그래서 3대의 배가 와서 사람들을 실어간다고 했다. 나는 3시 55분 배편이었지만 얇게 입고오는 바람에 추웠고, 오후에 비가 오기 시작한다고 해서 이번 배를 타고 나가려고 했다. 선착장을 관리하는 아저씨께 여쭈어보니 12시 20분 표를 끊은 사람이 먼저고 자리가 나면 태워주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서 정원 초과라고 태워주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탄 인원만해도 차고 넘쳐서 분명 배에 실린 구명조끼의 개수를 훨씬 뛰어넘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비진도에서 오셔서 표가 없던 사람들이나 나처럼 3시 55분 표를 가진 사람들, 혹은 하루 민박해서 표가 없는 사람들 등 10명정도가 남았다. 어떤 나이드신 노부부는 매표소도 없어서 표도 못끊고 한참을 기다리게 해놓고 태워주지 않았다며 화를 내셨다. 뭐 나야 앞당겨가는 것이니까 억울하지는 않지만. 그런데 3:55분 티켓 보유자들 중 목소리 우렁찬 사람들은 탔다고 들었다. 어쨌든 소매물도에는 매표소가 없으니 섬에 들어오기 전 무조건 왕복표를 끊는게 좋을 것 같다.


거제도 쪽에서는 배가 좀 더 자주왔다. 배가 좀 작았는데 거제(저구)라고 써있었다. 내가 생각한 거제는 통영보다 훨씬 크고 발달한 도시여서 그냥 이걸 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3시 55분에도 줄이 이만큼 길어서 느릿하게 굴다간 배를 타지 못할 것 같았다. 배를 타지 못했던 그 10명 남짓의 사람들은 거제행 배를 탔다. 현금으로 10000원을 냈다. 통영행 3시 55분 티켓의 뒷면에는 탑승 전까지는 어느정도 환불이 된다고 써있어서 내려서 전화를 걸려고 했다.

1시간 조금 못가서 거제 저구에 도착했다. 아니근데 뭐야 왠 진짜 작은 어촌 마을!!!!!!!!!!!!!!!!! 내리자마자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거제 저구 사진을 안찍어놓은 것이 아쉽다. 여기서 큰 도시까지는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이 되었다.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고 표 환불받는 방법을 알아보자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어떻게 전화가 연결되어 목소리를 들으니 그 매표소 아주머니인 것 같다. 표를 살때에도 좀 불친절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환불은 안된다고 한다. 아직 배 운행 시각까지는 3시간이나 남았는데! 전액 다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뒷면에 환불 된다며! 뭔가 나아니어도 탈 사람 많으니 배째란 식이다. 아무튼 관광객이 차고 넘치는 곳은 친절을 기대하면 안된다. 손님이 을이다.

주변을 보아하니 여기는 투어회사에서 소매물도로 갈 때 주로 이용하는 항구 인 것 같다. 한쪽 주차장에 관광버스들이 꽤 많이 보였다. 우선은 길을 따라 마을 뒤쪽으로 올라갔다. 아까 배에서 봤던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 정류장을 둘러보니 통영가는 버스는 하루 5편, 가장 가까운 시간 대는 3시 10분쯤이었다. 거제를 돌아다니는 버스는 종종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잘 안온다. 심심해서 정류장에서 혼자 여행온 것으로 추측되는 남자분에게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좀 하다가보니 두 여자분들이 왔다. 통영가는 버스가 3시 10분에 있다고 하니 그 중 한 여자분이 택시를 타자고 제안했다. 마침 밖에 검정택시가 있었는데, 그 분이 흥정에 성공해서 40000원에 통영여객선 터미널로 갈 수 있으니 각자 만 원씩 내자고 했다. 초면이었지만 공통의 목적(여기서 벗어나야!!)을 가지고 있었기에 흔쾌히 콜했다. 택시를 타보니 안탔으면 큰 일 날뻔 했을 정도로 시골이었다. 나중에 지도를 보아하니 거제에서 가장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느순간부터 졸다가 일어나보니 어느새 통영이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각각 돈을 내고 내려서 헤어질 것 같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 남자분과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통영에 대해 좀 아시고 소매물도에는 매년 오시는 모양이다. 그 분의 설명을 감탄하며 들었다. 

원래는 다음날 집에 가려고 했지만, 바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까지 비가 온다면 무거운 짐을 멘채로 우산까지 쓰긴 싫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래저래 돈을 많이 썼다. 곧 어버이날이고, 5월은 행사도 많아서 주머니 사정도 간과할 수는 없었다. 같이 통영버스터미널 쪽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 아저씨에게 저구에서 왔다고 하니까 여기 사람들도 저구는 잘 안간다면서 깜짝 놀래신다. 사투리를 전혀 안쓰시는 기사님은 나의 직업을 단 번에 맞추셨다. 정말 재미있는 분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그분은 포항으로 가는 표를 끊고, 나는 남부터미널로 가는 표를 끊었다. 그리고 가기 전에 터미널 앞 국밥집에서 국밥 한그릇을 얻어먹고 그분은 4시 20분에 포항으로, 나는 40분에 서울로 출발했다. 뭐 이래저래 신나고, 즐거운 통영여행이었다. 그리고 여행은 이딴식으로 무계획, 무개념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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