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쇠소깍, 기억나는 저녁밤

쇠소깍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이제 제주도 여행의 반절을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처음 타보는 스쿠터에 지도하나 달랑 들고 다니는 이번 여행이(결국 셋째날부터는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렇게 만족스럽고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날씨까지 퍼펙트!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제주도 날씨라 비가와도 쿨해지겠다고 열심히 다짐했건만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제주도 남쪽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길찾기가 훨씬 수월했다. 덕분에 쇠소깍까지 가는 길도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제주도 한바퀴 도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무슨 여행사에서 온 것마냥  발길 닿는 대로 다 들렀다.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은데 이놈의 호기심은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 덕분에 여행은 늘 쉬러가는게 아니라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기 훈련같이 되어버린다. 뭐 그래도, 여행이 끝났을 때 '갔길 잘했어'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패턴은 절대 변하지 않을 듯 하다.



혼자 여행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던 순간을 꼽는다면, 그것은 쇠소깍에서 보트를 타는 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절경 속에서 열심히 노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혼자서는 별로 오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지만 풍경만큼은 정말..!





둘째날의 기이한 숙소. 

저녁을 먹인답시고 백패킹족 아저씨의 자그마한 집(코딱지만한 텐트)에 손님들을 내려주고 사라졌다가 다시 폭풍처럼 등장한 주인아저씨와 스텝이 있는 집이었다. 백패킹족 아저씨들은 여기에 묵은 적이 있었던 손님이었고,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신혼 부부까지 총 4명의 사람들이 나를 비롯한 손님들을 맞이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조합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나는 사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얌전을 떨며 먼저 다가가지는 못해서 거의 듣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그것 나름대로 재밌었다. 여기 사람들은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친절을 베풀고 있어서 나도 점점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늘 비슷한 사람, 늘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이 날만큼은 정말 다른 세상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았다. 특히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아저씨와 스텝분들은 살아 숨쉬는 만화 캐릭터 같았다. 스페이스잼 처럼 현실 속에 만화 캐릭터들이 섞여있는 느낌이랄까, 꿈 같은 기묘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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