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을 즐거워하자


집에서 해투 야간 매점을 보고 요리를 따라하고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나가서 보고 겪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밖으로 나서면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삶의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난 늦겨울, 나는 계속 갑작스레 닥친 야근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고흐 전시회를 놓쳤다. 거장의 전시회를 가는 것은 솔직히 어떤 의무감도 한 몫 했었는데 그래도 어찌나 후회되던지. 이런 몇몇의 사건들을 통해 아무리 힘들더라도 결국은 움직이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바로 어제, 나는 두 편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하나는 시립미술관에서의 고갱전, 다른 하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라이프 사진전이다. 예상치 않게 생긴 공백이기도 하고 전시회는 혼자가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믿고 있어서 아침 일찍 나홀로 출발했다. 오전부터 길게 늘어진 시립미술관의 줄은 살짝 당황스러웠고, 미술관 안의 상황은 그보다 더욱 복잡스러워서 한숨이 나왔다. 일단 사람들이 많아서 엄청 시끄럽다. 그리고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부모들이 많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된다. 그림에 대한 지식보다는 그림을 본인 스스로 이해하고 느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여튼 별로 유쾌한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갱이라는 화가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전시회였다고 생각한다. 고갱은 한국에서는 고흐만큼 인기있는 화가가 아니었으니 새롭게 알게된 점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게다가 그의 대표작들이 한 자리에서 동시에 소개되는 일은 고갱전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만약 이번 전시회를 놓친다면 프랑스와 런던과 보스턴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그의 걸작들로 유명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가 아닌, '세 명의 타히티 사람들, 또는 대화'였다. 모르겠다. 사실 그의 타히티 작품은 이국적 풍경을 그림으로 유명세를 타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도 싶었고, 원주민에 대한 무의식적인 우월주의랄까, 마초적인 느낌이 들어서 속으로는 불편함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세명의 타히티 사람들, 또는 대화'는 마음가는 대로 솔직하게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그려진 때를 찾아 보니 그의 생명이 쇠잔해진 때여서 내 생각이 글쎄,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르겠다.


고갱의 전시를 보고 기운이 다 떨어져서 라이프 사진전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가기를 참 잘했다. 우연히 도슨트 시간에 맞아서 사진 속 인물, 현장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희노애락이 담긴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서 멍해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슬프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뭐 그랬다. 라이프지가 흑백사진을 담았을 때는 전쟁을 미화하는 도구로, 컬러사진을 담았을 때는 반전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로웠고.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변화의 폭이 크며 전쟁규모도 남달랐던 20세기를 라이프지라는 잡지를 통해서 사진을 남겨놓을 수 있었던 것은 사진 속 인물들에게는 과연 행운일까 불행일까. 역사는 쓰는 사람의 주관에 달렸지만 사진은 어쨌든 객관적이며 없앨 수는 있지만 바꿀 수 없다. 그들은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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