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ago] 도착, 걷기 시작하기.

2012년 일 년 동안 휴가를 꾹 참아내고 연말에 몰아서 2주나 써버렸다. 시카고와 뉴욕 여행을 위해서! 뉴욕은 늘 익숙하지마는 멀고 먼 미지의 세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확 지르고 말았다. 원래 영국 여행을 위해서 모은 휴가와 자금이었지만, 올 여름 런던 올림픽을 보면서 오히려 런던에 대한 매력이 급격히 사라져서(반감이 매우 상승했다!) 미국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게다가 뉴욕에는 사랑하는 나의 친구 K가 살고 있다. 정말로 보고 싶었고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8월에 2주간 미국 여행 가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허락까지 받아 놓고는, 여행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괜히 사고 친 건가 싶기도 했다. 동계 권장 휴가 기간이고 중간중간 빨간 날이 있지마는 외국계가 아닌 일반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 2주나 자리를 비운다는 건 꽤 어마어마한 일이다. 왜 그 당시에는 전혀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더운 여름날이라 무작정 떠나기만을 간절히 바라서였을까. 그러나 적당히 바쁠 것 같았던 하반기는 생각보다 훨씬 일들이 많았고 덕분의 여행 준비는 비행기와 숙소 정도만 해결하고 일정과 경로는 완전 미정! 시카고에 대한 여행책은 동부 여행 가이드북 한 켠에 작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전부였고, 뉴욕 여행 책은 5권이나 사다 놨지만 그 중에 제대로 읽은 것은 단 한 권 뿐이었다. 시카고는 가기 전날 컴퓨터를 붙잡고 밤새 폭풍 검색을 해댔고 뉴욕은 일단 가이드북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이번 여행은 회사 선배와 함께했다. 늘 혼자 가는 여행이었는데 동행자가 있으니 마음이 좀 더 편안하고 부담도 적었다. 여행지에서 어떤 갈등이 있을지 걱정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밥 먹는 것 만큼은 이전보다, 그리고 남들만큼 즐겁길 바랐다. 선거날이어서 그런지 공항은 북새통을 이뤄서 티켓팅도 한 시간이나 소요되었고 우리가 탈 비행기도 만석이었다. 덕분에 앞뒤로, 최악의 자리인 복도 석 가운뎃줄에 앉아야 했다. 




시카고는 한국과 15시간 시차가 나기 때문에 오전 11시 40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당일 오전 9시 5분에 도착하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여태껏 비행기가 제시간에 착륙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비행기의 정시 도착은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지만, 정시 도착으로 유명한 대한항공답게 정말 1분도 안 늦었다. 다만 대한항공이 오헤어 공항 안에 5터미널에 있어서 비행기가 이동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메이저 국적기는 제주 노선을 제외하고는 처음 타봤는데 편하긴 정말 편했다. 게다가 간식이 뜨끈한 피자라니!

그러나.. 악명 높은 미국의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줄이 엄청 길었는데 우리가 좀 늦게 나온 것도 있지만 외국인 심사 창구의 수도 적고 이전에 아시아나 비행기가 연착되어 도착하는 바람에 더욱 그랬다. 장거리 비행으로도 지쳤는데 계속 서 있느라고 진이 다 빠졌다. 입국 심사는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소문대로 그닥 친절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공항은 꽤 낡아보여서 사실 미국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겨우 수속을 마치고 Blue line 지하철을 타고 바깥 풍경을 보며 시내까지 이동했다. 조용한 주택가가 보이더니 이내 높은 건물들이 가까워졌다. Clark/Lake 역에서 내려서 택시탈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으니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노신사분이 "May I help you?" 라고 물어왔다. 덕분에 쉽게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 수 있었다. 창문 바깥으로 본 시카고 건물들은 어찌나 멋지던지! 정말 계속 바깥을 보며 탄성만 질렀다. 홍콩이나 강남같은 외벽이 유리로 덮힌 건물이 아닌 단단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었다. 아주 중후하며 고전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고, 또 어떤 건물은 굉장히 세련되어 보였는데 어쨌거나 모두 다 조화롭게 보였다. 뭐랄까.. 건물 하나하나가 설계한 사람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듯 했다. 시카고에 왔다는 것이 그 때서부터야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고 기분도 점점 나아졌다.

호텔은 아무 생각없이 expedia에서 가격이랑 평이 좋길래 예약을 했는데 위치까지 나름 괜찮았다. 호텔이 Magnificant mile이라는 곳에 있어서 주변에 일반 패션 브랜드에서부터 명품까지 없는 게 없었다. 가려고 점찍어 놓은 식당들도 근처에 다 있었다. 사실 Loop지역까지는 좀 걸어야 하지만 다운타운 자체가 작아서 마음만 먹으면 걸어다닐 수 있다. 무엇보다도 Crate and Barrel 숙소 바로 앞에 있어서 제일 좋았다.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매장이었으니까!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와서 Navy Pier로 걸어갔다. 바람의 도시라고 불리는 시카고 답지 않게 한국보다 바람도 약하고 그다지 춥지 않았는데, 걸을수록 살 속을 파고드는 기분 나쁜 찬기운이 엄습하는 날씨였다. 그래도 여행의 설렘은 엄청나서 건물 구경하는 재미에 쏙 빠졌다. 네모난 건물들의 외관이 어찌나 이렇게 다 다른지!




드디어 바다같은 호수, 미시간 호 도착! 

미시간 호에 서 있으면 홍콩의 스타의 거리 산책로나 해운대가 떠오르는데 솔직히 그 곳들보다도 훨씬 더 와닿는다. 지금 생각해도 시카고의 건물들과 그들 간의 조합은 보아온 그 어떤 도시들보다도 최고였다. 실제로 봤을 때의 그 느낌을 카메라로 온전히 담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여름이나 가을, 날씨 좋은 날에 이 곳을 다시 한 번 만나길 바랐다. 이 날 날씨가 조금 씁쓸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Navy Pier에서 만난 다람쥐. 도시속에 이런 귀염둥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도 이 친구들을 종종 봤다. 경계심은 있지만 심하게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




Navy Pier는 작은 어린이 대공원 같았다. 식물원과 어린이용 놀이기구들이 있어서 주로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놀러오는 곳인 듯 하다. 겨울이라 놀이기구는 다 닫았고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기념품 매장만 화려했다. 그래도 산타할아버지가 꼬마들 이야기 들어주는 이벤트가 열려서 귀여운 애기들을 많이 봤다.




미국에서의 첫 식사를 맥도날드로!
식당을 찾기에는 너무 배고팠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한국보다 훨씬 부실한 토핑과 크기 주제에 7.13달러나 받는 패기란!!!!! 음료수만 한국보다 훨씬 컸다. 시카고에 맥도날드 본점이 있다던데 등잔 밑이 어두운건지 여지껏 가본 맥도날드 중 가장 맛없었다. 이상한 메뉴를 고르긴 했지만, 역시 빅맥이나 BLT, 치킨 계열이 무난한 것 같다. 무엇보다 BLT는 어딜가든 왠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조합이다.




멈춘 것 같지만 일부 놀이기구는 탈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삭막한 놀이동산 같다.




아직까지는 살짝 발랄(?)한 상태.




그러나 결국 입국 수속의 후폭풍과 시차를 이기지 못해서 숙소에 돌아가서 8시까지 자고 저녁에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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