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걷다


3.1 절을 맞아 오랜만에 서대문형무소에 갔다. 한 15년 전쯤, 방학을 맞아서 과제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친구들과 참으로 멀리도 갔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정말 추운 겨울날이었고 그래서 옥사의 차갑고 삭막했던 느낌이 더욱 뚜렷하다. 실내임에도 온기는 전혀 없어서 몸이 녹기는커녕 입김만 하얗게 모락모락 올라왔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얼마나 춥고 힘들었을지 마음이 슬펐던 것 같다.

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는 무료개방이라 사람들이 참 많았다. 특히 엄마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온 아이들이 많아서 부럽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빠들은 아이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더욱 적극적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서대문형무소가 어떤 곳이고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생활했는지, 일제의 만행은 어땠는지 설명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신기하게 바라보고 물어보기도 한다. 아직은 어리기에 설명은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의미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먹을 게 없을까 검색하던 차에 영천시장이 나왔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출연했다는 유명한 떡볶이집 방문 후기가 블로그를 뒤덮는다. 분식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하는 나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시장에서 좀 더 안쪽에 있는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집을 찾아갔다. 이곳도 줄은 30분 정도 서야 할 것 같았지만 기다리자고 설득했다. 여기까지 올 일도 거의 없는데 아무 떡볶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 M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미안했지만 그동안의 포기와 실패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역시 줄을 선 집이 제일 맛있었다. 우린 배가 고픈데 앞에서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으니 보고 있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도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드디어 떡볶이 2인분, 튀김 2인분, 순대 1인분을 주문했다. 진짜 배부르게 먹었다. 국물은 맵지 않고 쫄깃쫄깃한 밀떡은 입에 착 감긴다. 떡볶이 국물에 흠뻑 적셔진 튀김을 한 입 깨물었을 때 바삭함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달콤한 떡볶이 국물은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좀 과하게 많이 먹긴 했지만 덕분에 서대문에서 서울역, 남대문시장, 그리고 명동까지 힘차게 걸어갈 수 있었다.





M이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뛰어가서 구경한 도로 위 철도 길. 사실 나도 서울에서는 처음 보는 풍경이다. 이국적인 느낌에 우리는 촌스럽게 환호했다. 좀 부끄러웠지만 아이처럼 신기해하는 M의 모습이 재밌었다.





명동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배가 안 꺼졌다. 삼겹살 김치말이는 꼭 먹어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대신 40분 간 걷느라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어릴 때 명동은 멋쟁이들이 많고 노는 언니들이 가서 가오잡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 돼버렸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을 구별해 보았다. 나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M은 나보다 더하다. 정답률도 좋지만 기억력까지 좋다. 어디 놀러가면 저 사람 아까 지하철역에서 봤었다고 이야기해준다. 처음에는 여자를 관찰하는 건가 싶어서 못마땅했는데 이제는 그의 습관이려니 하면서 나도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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