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에서의 하루

토요일 저녁만 되면, 경마공원역에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아저씨들, 소위 '경마꾼'들이 잔뜩 탔다. 절여진 담배냄새와 거친 질감의 대화가 오고 가는 모습을 너무 자주 봐와서 그럴까, 경마공원 역은 왠지 가기 꺼려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경마장이 가족, 연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등 경마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인터넷에 경마장 데이트 후기가 많이 올라왔다. 다들 너무 재밌었다고, 작은 금액으로도 소소하게 즐길 수 있고,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다며 적극 추천했다. 게다가 돈을 땄다는 후기도 종종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와 M도 나름 부푼 꿈을 가지고 경마의 세계로 나가보기로 했다. 

1층은 가족이나 연인을 위한 공간이라면, 2층 부터는 본격적으로 경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층에는 흡연이 비교적 자유로운 듯 했다. 돗자리를 가져와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있었고, 경마장 한쪽에는 작은 텐트를 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족들도 있었다. 경주가 없는 시간에는 각자의 포근한 봄날을 즐겼다. 

교육 시간에 무슨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한 번 해보기로 한다. 초보는 무조건 연식이다. 연식은 순위에 상관없이 3등 안에 들어오는 세 마리 중 한 마리만 맞추면 된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배당률만 보고 지른 탓에 첫 판부터 실패했다. 잔뜩 약이 올라 두 번째 부터는 나름 경마꾼 흉내를 내면서 말의 성별, 나이, 과거 성적과 기수 성적, 몸무게 등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3,600원을 땄다! 총 6,000원을 걸었으니 손해지만, 3,600원이 내게 주는 의미는 특별했다. 점점 경마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내가 분석만 잘한다면 로또 4등보다는 많이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다음 경기 분석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확실한 우승 후보가 있는 라운드였다. 말과 기수가 최상의 조합인지 7번 말의 배당률은 빠르게 낮아졌다. 우리의 마지막 라운드이기도 해서 남아있는 5,100원을 전부 다 털었다. 연식, 복연식 뿐 아니라 꾼들의 놀이터라는 쌍식에도 걸었다. 경마는 생각보다 이변이 크지 않아서, 역시 그 우승마가 1등을 거머쥐었다. 이번에는 연식, 복연식은 다 틀렸는데, 쌍식을 맞췄다. 쌍식을 맞추다니! 이것은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이다. 쌍식은 1, 2등 말을 순위까지 맞춰야 하는 것이라서 배당률도 높았다. 이번에는 6,000원을 따서 900원 이득을 보았다. 처음에 10,000원을 등록하고, 총 9,600원을 땄으니까 이 정도면 소질 있는 초보 경마꾼 아닌가?!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경마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할 것 같지만, 분석을 하고 나면 머리가 꽤 지끈지끈하다. 가끔 시원하게 질주하는 말이 보고 싶을 때 가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