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오페라

프라하에서 10시 39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빈에 2시 넘어서 도착했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흐린날씨는 계속되어서 우울증에 짜증병까지 걸릴지경이었는데, 빈에서도 그 날씨는 계속되었다. 게다가 나에게 빈은 모든 방문지 중 기대치가 가장 낮은 도시였었다. 대도시, 수도일수록 볼거리가 거기서 거기였고, 딱히 빈은 뭐가 유명한지도 모른 상태였다.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설렘은 거의 증발해버렸다. 아마 세계사를 조금 더 알고 갔었더라면, 오스트리아가 한때는 땅도 넓었고 정말 강한 나라였었다는 걸 알았았더라면 조금 더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뮌헨에서 머물고 있었을 때 추천받은 민박집에 갔는데, 그 곳 사장님께서 오페라하우스에서 하는 라보엠을 추천해 주셨다. 입석은 저렴해서 3~4유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후에 도착해서 딱히 뭘할지 생각을 안하고 있던터라 그냥 한번 보러가기로 했다. 라보엠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30분 일찍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한다. 4시에 오페라하우스 앞에 도착하면 민박집에서 간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거라 만나서 같이 보고 오라고 하셨다. 서양사람 틈바구니에서 동양사람 찾는 것은 일도 아니라 쉽게 합류할 수 있었다. 관련 책자도 빌려 주셨는데, 오페라가 이탈리아어라 내용을 모르고 가면 재미도 감동도 없을 거라고 기다리는 동안 읽으라고 하셨다. 확실히 내용을 미리 알고 가는게 도움이 되었다.

오페라는 7시 반에 시작이었으모로 3시간 반은 기다려야 했다. 4시부터 줄서면 5시에 문을 열어주는데, 그것도 바로 표를 사는게 아니라 실내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때, 밖으로 나간다거나 화장실을 가면 끝!! 정 급할때는 줄 앞뒤의 사람과 스태프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가야한다. 스태프 할아버지가 워낙 엄격해서 절때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가 6시 가까이 되서야 표를 살 수 있었다. 자리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달랐는데, 최고 4유로였고 학생할인은 되지 않았다. 가장 비싼 표를 구입했다. 그래봤자 한국에서의 영화값보다도 훨씬 싸지만. 표를 사도 끝나는게 아니었다. 공연장 각각의 출입문 앞에 2열종대로 사람을 세웠다. 그 상태로 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두다다다하면서 엄청난 경보실력을 보이면서 들어가기 시작했다.(뛰면 직원들이 주의를 준다) 나는 꽤 앞에 있었기 때문에, 맨 앞줄 거의 가운데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첫번째로 입장한 사람은 맨 앞줄이라도 가장자리로 들어가야해서 줄을 설 때는 10위권 정도가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도 재빨리 다른 사람들처럼 스카프로 영역표시를 확실하게 매겼다. 이곳은 입석이라도 사람들을 꽉꽉 채우거나, 사람들이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입석 자리 앞에는 1인당 오직 1개씩만 차지할 수 있는 자막을 나타내는 디스플레이 화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다 차지되면 어쩔 수 없이 뒷줄로 가야 하는 것이다.이제는 맘편히 잠깐 쉬러 복도로 나가보았다. 배고파서 무언가 먹을 걸 찾았는데, 오페라하우스 내의 음식점은 비싸보였고 사람도 많아서 그냥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유럽이야 7시가 되면 슬슬 닫기 시작하긴 하는데, 여긴 좀 심했다. 결국 역까지 뛰어가서 문을 닫는중인 상점에서 빵 하나를 사서 먹었다. 왠지 안에는 빵먹을 분위기가 아니라 밖에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한가지 재밌는 건 좌석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장이나 드레스였다. 반면 입석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주 쁘리했다.


작품보러 간다고 카메라를 안 들고가서, 공연장 내부는 아쉽지만 휴대폰으로 찍었다.




배우들이 커튼콜하러 몇 번이나 나왔다. 아마 5번이었나. 무대 연출이나 이런면에 있어서 정말X100000 훌륭했다. 무대 밑에 오케스트라의 공간이 있는데, 빈 필하모닉이 연주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라보엠은 프리미엄공연이라 최고의 연주가들만 뽑는다고 한다.


라보엠 내용은 사실 간단하다. 가난뱅이 남자들 4명이서 재미나게 지지고볶고 사는데, 그중에 한명(루돌프)이 미미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근데 미미가 죽을 병에 걸리고, 루돌프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해주다가 결국 미미는 죽는다. (너무 앞뒤 짤라먹었다.)

1막은 4명의 친구들이 허름한 집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땔감이 없어서 종이뭉치를 화로에 넣어 태워버린다. 그러다 한명이 돈을 좀 벌었는지 돈과 먹을 걸 들고 들어온다. 먹고 놀고 있는데, 집주인이 와서 밀린 집세를 받으려다가 애들이 맛난거 먹고 있고, 자기한테도 대접하고 그러니까 기분이 좀 풀려서 같이 놀다가 그러다 나간다. 이 친구들은 밖에서 2차(?)가자고 그래서 밖에 나가는데 루돌프는 뭐 할게 있다고 좀 있다 나간다고 한다. 그러다가 허약한..(많은 성악가들은 66이상의 체형을 가지고 있으므로.. 허약하다고 생각해야한다) 미미가 촛불 빌린다고 찾아오는데, 여기서 불꽃이 파파박 튄다. 조금 유치하지만 바람 때문인지,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촛불이 꺼져있는 상태에서 열쇠를 찾는다며 더듬더듬하며 손을 잡는다.그러면서 서로에게 빠지게 된다.

2막은 친구들 4명과 미미가 시장에 놀러다니다가 술집에 가는데, 뮤제타라고 하는 약간 허영끼 있는 여자가 돈 많은 늙은 남자와 나타난다. 그 4명중에 마르첼로라고 하는 친구가 뮤제타와 사랑의 줄다리기를 심하게 하다가 뮤제타는 결국 마르첼로와 함께 술집을 나간다. 그 4명의 음식값까지 그 돈 많은 남자에게 떠넘긴채. 2막의 무대연출은 시장 그 자체를 옮겨놓은 것 같아서 커튼을 열었을 때 사람들 입에서 놀라움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람들도 많고, 규모 또한 엄청났다.

3막은 안개가 자욱한 우울한 날씨의 장소였다. 미미가 루돌프와의 사이 때문에 마르첼로와 의논하다가 루돌프가 어디서 툭 튀어나와서 미미는 숨어버린다. 루돌프는 마르첼로에게 요즘 미미에게 딴 남자가 생긴 것 같고, 미미가 너무 아픈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이야기 한다. 미미는 듣다가 뛰쳐나와서 격하게 슬퍼하며 결국 둘은 이별한다. 이 3막의 무대연출도.. 감탄을 자아냈다. 안개를 정말 효과적으로 표현해서, 간간히 행인들로 나오는 사람들이 한 10m뒤에 있는 것 같았다. 실루엣만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내가 그 장소에 있는 느낌이랄까.

4막은 1막의 가난한 집구석으로 돌아간다. 4명은 다시 평범하게 재밌게 그렇게 지내다가 갑자기 뮤제타가 들어와 미미가 너무 아파계단을 못올라오고 말한다. 루돌프는 미미를 부축해서 방에 데려와 침대에 눕힌다. 뮤제타는 자신의 물건을 주며(무엇인지는 가물가물) 의사를 데려오라고 해서 한명이 의사를 데리러 간다. 그러다가 둘만 남게 되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들어온다. 루돌프는 커튼을 치려 잠깐 창가로 가는 사이 미미는 죽는다. 루돌프의 절규를 끝으로 막이 내린다.

개인적으로 미미보다는 뮤제타 역할의 성악가의 실력이 매우 뛰어난 것 같아서 인상에 더 강렬히 남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미미의 역할을 했던 성악가는 출산하고 복귀한지 얼마 안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무대연출하며 성악가들의 실력하며, 빈필의 라이브 연주까지 정말 감동스러운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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