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있는 유럽 입성기

출발하는 당일 아침은 상당히 정신 없었다. 인천대교가 개통한 뒤로 리무진을 타고 공항까지 50분도 안걸렸기 때문에 여유를 부렸다. 문제는 그 당시는 새벽이었고, 오늘 비행기 출발시각은 10시 반이었다는 것이다. 화요일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1시간 40분정도 걸려서 공항에 도착했고, 10kg배낭을 맨 상태로 헐레벌떡 뛰어서 발권을 마치고 짐을 부쳤다. 그 때 데스크는 발권을 종료하고 있던 상태였으니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계산해보니 공항에 1시간 반 전에 도착한 셈이었다. 나는 바로 보안검사, 출국심사를 완료하였지만 면세점 구경은 포기해야 했고 탑승 게이트를 찾아야했다. 정말 인천공항 무지막지하게 크다. 계속계속 걸어서 윙셔틀 비슷한 지하철을 타고 난 뒤, 계속계속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니 정말 떠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으쓱미묘해졌다. 그러나 곧바로 지루함에 몸부림쳐야 했지만. 장장 9시간이나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심심한 일이었다. 핀에어라 한국영화는 거의 없고 외국영화는 한국어자막이 없었다. 잠도 하나도 안와서 스도쿠나 했다.



핀란드에 경유하기 위해 도착하였는데, 5시간정도 대기시간이 있었다. 나갔다 올까도 했지만, 시간이 어중간한 감도 있고 공항을 구경해도 괜찮을 것 같아 돌아다니다가 선글라스를 하나 샀고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주문해서 카페에서 노닥였다. 분명 비행기에는 동양사람 천지였는데, 내리고 나니 나혼자만 동양인이다. 그 흔한 일본인조차 없다. 아, 뭔가 진짜로 외로워졌다. 넷북을 켜서 와이파이를 겨우 잡아 네이트온을 했다. 내가 유럽여행중에 네이트온을 한 때가 딱 두 번있었는데, 그 중에 하루다. 한국은 벌써 밤 9시였다. 신나게 수다떨다 밧데리가 떠나간 뒤에는 화장실도 구경가보고(인천공항이 훨씬 좋다!) 여기저기 걸어서 '난 동양에서 온 이방인입니다' 티내고 다녔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뜬 붉은 왕 보름달


파리로 가는 비행기는 한시간 가까이 연착됐다. 이번이 해외여행 겨우 두 번짼데!! 제대로 시간맞춰 타고 내린 적이 없다. 원래는 9시 35분 도착인데,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이틀 전 유럽에서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했는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헷갈리긴 하는데, 당시 파리의 시계가 완전하게 서머타임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다니면서 각기 다른 시계 때문에 혼란스러웠으니까. 근데 나도 참 웃기다. 핀란드에서의 시차는 서머타임 적용한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 왜 파리는 서머타임 적용이 되지 않은 시간으로 알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오르쉐 버스 정류장. 공항 버스정류장인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한 모습에 몇 번이나 확인했다.





결국 11시 반이 넘어 파리시내에 입성했고, 사람들에게 물어서 파리 지하철역을 찾아갔다. 친절한 파리시민은 직접 지하철역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지하로 한참 내려가는데, 매우 구질구질하면서 소문으로만 듣던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에 사람이 없어서 설마 운행이 중지되었나 큰 걱정을 했지만, 매표소에 직원이 있었다. 아 진짜 속으로 얼마나 기뻤던지 춤이라고 추고 싶었다. 10장짜리 까르네를 사고, 플랫폼을 찾아가는데도 헤맸다. 뭐 여긴 영어도 없고, 물어보는데 프랑스어로 대답해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파리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구!

결국 남들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플랫폼에 도착했고 12시 가까이 되었지만, 그 시간에도 지하철이 다녔다. 겨우 4정거장 가는 것 뿐이었는데 매우 지쳐버렸다. 다행히 숙소가 역과 가까웠다. 숙소 건물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다. 캄캄한 가운데 계단을 올라가는데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많이 나서 깜짝 놀랐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그냥 누워버렸다. 하지만 한국시간으로 아침 8시쯤 되었던 지라 또 잠을 못자고 32시간 째 깨어있는 채로 파리에서의 본격적인 첫 날을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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