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발치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고 언젠가는 꼭 사랑니를 빼고 싶었다. 어렸을 땐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니를 빼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생니를 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용기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아마 고등학교 올라오면서부터 사랑니가 하나 둘씩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어 총 3개가 났는데 치과가 너무 가기 싫어서 이제껏 대롱대롱 달고 살았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이 한 번에 두 개? 였나 빼셔서 얼굴이 매우 퉁퉁 부으셨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 사랑니 발치에 대한 공포와 동경이 커졌던 것 같다. 


남들보다는 늦은 나이지만 부정교합을 가다듬고자 교정을 시작했다. 교정을 하면 발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내 이를 온전히 가지고 교정을 하게 되었다. 썩은 이도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엄청 끔찍할 것으로 걱정했던 치과 치료는 의외로 견딜만했다.(비용은 전혀, 절때 견딜만 하지 않지만.) 결국 "그래 어디 한 번 사랑니 따위 뽑아보자!" 라는 큰 결심까지 하고 말았다. 


상악 사랑니는 동네 치과에서 쉽게 뽑았다. 보통 동네 치과는 토요일에는 사랑니 발치를 잘 안하는 듯 하지만, 그 사랑니는 워낙 기형적으로 작은데다 눕지도 않아서 가능했다. 꿰매는 과정도 없었고 병원에 다시 내원할 필요도 없었다. 마취 풀리고 나서도 그다지 아프지 않아서 별 것도 아닌 것에 몇 년간 겁먹고 살았다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하악 사랑니 중 하나는 오늘 뽑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안 아프게 뽑는 병원을 찾아갔는데 사랑니가 정말 똑바로 났다고, 이런 이가 드물다고 칭찬(?)을 들었다. 대한민국 누리꾼들의 추천답게 정말 언제 이가 뽑혀나갔는지, 어느 순간 바느질을 하는 의사 선생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널부러진 사랑니를 기념으로 가져오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징그럽게 생겨서 깜짝 놀랐다. 마취가 풀리면서 점점 통증이 심해졌지만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20분 만에 통증이 사라진다. 평소보단 약간 조심스럽게 저녁을 먹고, 간식도 먹었다. 이제 사랑니는 딱 하나 남았다.

이미지 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