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여행기1

이름부터 묘하고 이국적인 코타키나발루. 여러 가지 의미에서 '처음'이었다. 엄마와 단 둘이 가는 첫 여행. 자유여행이 아닌, 첫 단체 가이드 여행. 처음 가보는 남쪽의 더운 나라. 이슬람 국가. 그리고 불과 일주일 전, 김정남 피살 뉴스로 우리나라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억을 기록하려 한다.




어릴 때는 여름을 참 싫어했다. 더워서 땀이 끈적끈적해지는 것도 싫고, 해수욕장에서는 발에 듬뿍 묻는 모래도 싫었다. 갯벌은 당연히 싫어했다. 모기도 벌레도 정말 싫었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남달랐던지라 어렸을 때부터 몸에 털이 많아서 놀림도 많이 당했다. 사진을 취미삼으면서 여름이 가진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여태껏 더운 나라는 기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적도의 태양과 투명한 바다를 꿈꿨다. 잠깐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으로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비행편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우리가 타고 온 제주항공 뿐 아니라, 대부분의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가 그렇다. 전날 저녁에 출발해서 늦은 밤에 도착해서 바로 숙소에서 하룻밤을 잔다. 귀국할 때는 바로 그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다. 도착하면 매우 이른 아침이라 출근을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체력의 한계로 포기했다.


 



이번 여행은 넥서스 리조트에서 묵었다. 원래 수트라하버 리조트나 샹그릴라 리조트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전부 매진이었다. 확실히 공항과 시내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인기가 없다. 자동차가 워낙 잘 보급되어서 대중교통은 한국의 시골과 별다를 바 없다. 택시를 타고 나와야 하는데, 가이드 J에 의하면 비용도 왕복으로 하면 7만원인가? 든다고 했다. 코타키나발루에도 우버가 있지만, 밤에는 위험하다고 가급적 타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시내에 나올 생각은 없었으니까 상관은 없었다.





코타키나 발루는 선셋으로 유명하다. 리조트 내에는 선셋바가 있었다. 가이드 J가 여기 햄버거가 맛있다고 해서 먹었다. 한화로 7000원 정도니까 결코 저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고기패티가 매우 두꺼운 수제버거라서 만족스러웠다. 전망도 좋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기억에 남는다. '선셋'바이지만 언제 가든지 정말 즐길 수 있는 식당이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여자는 멋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우리 엄마. 더 큰 캐리어에 더 많은 옷을 담아와야 했었다며 후회하셨다. 내 눈에는 충분히 많이 가져온 것 같은데, 그런 엄마의 눈에는 나는 패션 포기자다. 





엄마는 식당 음식에서 왠만하면 합격을 준 적이 별로 없다. 역시나 조식은 완전 실패. 동남아 음식을 처음 접해보셨는데, 음식이 너무 맛없어 보인다고 불만을 이야기했다. 동남아 음식이 대부분은 갈색이 많으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첫 날 리조트 조식은 나도 정말 별로였다. 둘째 날 이후부터는 그래도 괜찮아지긴 했지만 만족하진 않았다. 





리조트의 수영장은 지상낙원이라고 밖에. 엄마에게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지?' 라고 물었는데, 바로 '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 너무 좋다, 행복하다,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여기 사람들은 참 느긋하다. 그리고 열심히 안한다. 실수도 많다. 식권은 원래 받아야 할 장수보다 두 장이나 더 받았고, Bath towel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한 30분 뒤에 와서는 조그만 손수건 같은 것을 가져다 줬다.  물은 3병을 주다가 어느 날은 아예 안준다. 그렇다고 실수했다고, 빨리빨리 안한다고 항의하다가는 쫓겨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가이드가 숙소에서 별 문제 없었냐고 물었는데, 일행 중 누구도 숙소에 문제 제기를 안하니 가이드가 굉장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뭐 그런 곳이다. (그래도 리조트의 미니금고는 믿을 게 못되더라는 사고가 일어나긴 했다)


느긋하고 친절하지만, 나름 자존심도 센 사람들이다.

'뜨리마카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더더욱 친절해진다.





오후에는 잠깐 숙소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었다가, 6시쯤 슬슬 밖에 나오면 딱 좋다. 황금빛 하늘이 순식간에 주황색이 되었다가, 보라색이 되어간다. 지는 태양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예외없이 실루엣만 남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숨길 수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라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부터 노을 타령을 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히 난리가 났지만, 엄마도 가장 감탄했던 풍경이기도 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매일 다른 모습의 선셋을 만났으니까, 매일 저녁이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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